• 머무름은 나아감이 될 수 있을까— 김은정이 눈에 보이게 하는 소리들

    머무름은 나아감이 될 수 있을까— 김은정이 눈에 보이게 하는 소리들
    최영건

    소리의 물성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소리는 퍼질 수 없다고 한다. 음파는 텅 비었다고 일컬어지는 공간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리며 퍼지는 울림이다. 소리의 파동은 매개를 이동시키는 대신 매개를 그 자리에서 진동시키는 방식으로 퍼진다. 무언가가 퍼질 때 무언가는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는 아주 멀리로 간다. 김은정이 청각으로부터 시각적으로 가시화하는 ‘소리’의 감각은 어쩌면 그런 파동 그 자체의 성격을 닮았다. 음파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것에 잠시 동안 스치며 그들을 움직인다. 매개는 술렁인다. 그 술렁임으로 자신에게 스치는 소리를 멀리, 더 멀리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소리가 이동하는 방식은 머무름이자 나아감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전시에 설치된 〈조금 전,〉의 빛깔 속으로 들어서면, 몸을 스치는 직물의 보드라움과 가벼움이 마치 누군가의 음성 같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조금 전,〉(2026)을 이루고 있는 건 여러 은은한 빛들로 염색된 거즈다. 거즈는 그 어떤 천보다도 절실하고 긴밀하게 사람의 몸을 감싸고는 하는 직물이다. 달리 말해 거즈의 감촉을 가장 잘 아는 몸은 다친 몸, 아파본 적 있는 몸이다. 거즈는 얇고 성긴 면직물의 통기성과, 몸의 분비물을 잘 흡수하는 성질 덕분에 거즈는 붕대로 쓰이는 천이다. 〈조금 전,〉의 보드라운 빛깔 속으로 들어서면 그것이 몸의 곳곳을 스친다. 우리는 음파처럼 거즈를 진동시키며 그들 속으로 나아갈 것이다.
    붕대 속으로 나아가기. 우리는 거즈를 술렁이게 한다. 살을 감싸는 천이 살과 스치고 겹친다. 그들은 우리를 계속, 가야할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 거즈가 앞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거즈가 있어 그들과 잠시 스칠 수 있기에 우리는 어디로 나아갈 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작업의 은유이자 호소다. 처음에는 머리를 가벼이 스치던 거즈는 점점 더 온몸을 감싼다. 온몸으로 그와 마주하는 이만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김은정의 작업은 용감하고 애틋하다. 우리가 잠시 그 보드라운 거즈와 스칠 때, 머무름과 나아감이 교차한다. 서로를 움직인다. 우리는 그렇게 소리를 닮는다. 붕대를 진동시키며 그들을 스쳐 나아가는 소리가 된다.
    스스로 소리가 되는 체험은, 스스로 문장의 일렁임이 되는 체험과 맞닿는다. 우리는 소리가 온갖 말들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아닌 사물의 소리는 그들의 사물성이자,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서의 말이다. 천이 찢기는 소리, 붕대가 감기는 작고 절실한 소리, 때로는 아주 보드라운 소리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의 언어가 있다. 〈조금 전,〉이 음파를 닮았다면 그 곁에서 함께 이번 전시를 직조하는 〈멀리 희미하게〉는 사람의 언어가 배태하는 일렁임을 자기 몸으로 삼는다. 그 언어는 문자로 쓰였지만 글보다는 목소리에 가깝다. ‘스’와 ‘치’와 ‘다’가 호흡이라는 몸의 물성으로, 마음의 머뭇거림이나 환희로, 목소리를 닮도록 쓰인다.
    〈멀리 희미하게〉(2026)는 수십 장의 노방 천이 무지개나 물보라처럼 연달아 이어지고 겹쳐진 작품이다. 글로 쓰이는 문장은 필연적으로 유기체의 호흡을 언어 기호에 환원한다. 그러나 김은정은 그 언어 기호에 호흡이 깃들 틈을 두었다. 한 빛깔에 조그만 말 조각 하나씩, 낭독하듯 읊었다. 언어는 필연적으로 선형적이다. 우리는 언어 기호의 체계에 1초 뒤에 2초가 이어지는 시간의 선형성을 담았다. 김은정이 노방으로 지은 글도 시곗바늘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이 원은 하나의 단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원을 그리는 건 하나의 선이 아닌 선들의 머뭇거림과 겹침이다.
    ‘지’ ‘나’ ‘가’ ‘다’ 를 쓰는 직물 한 장 한 장이 어떤 각도로 꺾이며 이어져 있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이들이 쓰인 노방 천이라는 페이지는 평면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페이지의 기울어짐 자체가 한국어와 더불어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글을 써 보인다. ‘지’는 천의 끄트머리에 쓰여, 자기 뒤로 할 수 있는 한 가장 긴 공백을 두었다. 그러다 ‘지’의 페이지가 끝난 뒤에 ‘나’가 오고, ‘나’ 뒤로 페이지가 담아내는 시간은 ‘지’에 비해 짧아진다. 그리고 ‘가’는 더욱 짧아지며, ‘다’는 처음 ‘지’가 시작되던 페이지의 지점에 비해 그 반대쪽 끝에 달하도록 쓰였다.
    김은정의 이 쓰기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천천히 걷는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설계되었다. ‘지나가다’라는 말에 음운과 음운 사이에 망설임처럼 느린 숨이 담겼다. 움직이는 몸은 일상적인 한국어 문장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읽히는 것과 반대로 거닐며 이 숨을 마주한다. 숨이 섞인 문장은 글자로 환원될 수 없다. ‘가’에는 ‘가’라는 말의 올을 풀어내려는 듯, 눈물을 묶어두려는 듯, 글자를 이룬 실이 늘어져 있다. 이 가느다란 실과 공백을 담고 펼쳐진 페이지로, 작가는 ‘가’를 낭독한다.
    ‘지나가다’ 다음으로 쓰이는 것, 거기 이어져야만 하는 것은 ‘돌’ ‘아’ ‘보’ ‘다’의 겹침이다. 이 음운들은 ‘지나가다’ 속의 간격에 비해 거의 하나로 겹쳐 있다. 누군가의 돌아봄이 저기 멀리, 시간의 안쪽에서 지금 이 순간으로 향해 나오듯이. 시곗바늘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걷는 몸을 떠올려 본다. 그 몸의 궤적은 얼핏 원처럼 보이겠지만 그 원은 겹쳐진 페이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겹쳐짐은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그려지는 원 속에, 그 안팎을 연결하는 수평적인 시간을 기입한다. ‘돌’ ‘아’ ‘보’ ‘다’는 멈춰서서 그 안팎이 서로 겹을 짓는 방향을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말이다.
    ‘지나가다’는 계속 걷는 이가 마주하는 말, ‘돌아보다’는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이가 마주하는 말로서 놓였다. 두 가지 몸의 움직임이 이 말들을 이루고 있다. 하나는 사람의 몸이다. 이 몸은 거닐거나 멈추며 노방이라는 부연 페이지를 마주한다. 하나는 페이지라는 몸이다. 이 사물은 반투명해서 자신의 뒤를 내비친다. 뒤쪽에 풀려나온 올과 구김까지 안개처럼 부드러운 빛깔로 고백한다. 노방과 거즈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직조된 씨실과 날실을 드러내는 직물이다. 김은정은 이 두 직물의 짜임새를 부러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글자에서 풀려나온 올, 가장자리에서 터져나오는 실이라는 직물의 머리칼이자 핏줄을 보여준다. 직물이 내비치는 겹침은 온전히 투명하지도, 온전히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직물과 직물 사이 깃든 공기는 말 사이 들어차는 호흡 같다. 다시금 숨이다.
    김은정에게 언어는 숨과 분리되기보다 숨으로 감각되는 미디어에 가깝다. 후천성 청각 장애가 있는 작가의 감각은 소리의 성질을 청각이라는 단일성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라 불리는 매질의 파동, 몸과 몸의 연결이 구성되는 방식을 한층 정교하게 구체화한다. 겹겹이 겹쳐지는 직물을 짓는 씨실과 날실의 섬세한 짜임처럼, 소리는 교차와 접속 없이 탄생할 수 없다. 파동을 전달하는 매질의 입자들이 서로 연결될 때 이곳에서 저곳으로 소리가 번진다. 음파가 매질이라는 분자 단위의 몸을 필요로 한다면, 대화를 위해 서로 겹쳐지는 사람의 몸들도 있다.
    김은정이 말하는 소리의 감각에는 친밀함이 스며 있다. 이를테면 얼굴에 닿아 오던 사랑하는 이의 숨결이 있다. 그녀에게 자신의 말소리를 전하려 누군가 친밀히 몸을 굽힐 때, 그 숨이 살갗에 전해진다. 소통은 숨은 분리되지 않는다. 두 몸이 가까이 겹쳐지는 순간은 언어가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전해지는 순간이 된다. 〈조금 전,〉을 이루는 거즈가 살갗에 가장 긴밀하게 겹쳐지는 직물이듯, 〈멀리 희미하게〉에서 언어를 이루는 노방에도 숨결처럼 어른거리는 겹침이 있다. 음운과 음운, 닿아오는 소리의 단위마다 담기는 숨이다.
    직물은 씨실과 날실로 지어진다. 거즈를 엮어낸 짜임은 헐거워 사이사이 자연히 공기가 담겼고, 노방에 글을 쓸 때도 작가는 부러 글씨의 올을 풀었다. 공기의 흐름을 따라 글자가 나풀거린다. 공기가 깃든 천은 사람의 몸을 음파처럼 나아가게 하는 휘장의 길이 되고, 문장을 따라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걷게 하는 벽이 된다. 길도 벽도 단선적이는 않다. 그 안에 머물고, 자칫 단일하게 환원될 수 있는 선을 겹으로 감각시킨다.
    겹은 김은정에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수 년 전 뉴욕에서 활동하던 그녀에게 겹이란 연결이자, 무언가에게 더 많이 닿게 되는 행위였다. 김은정의 작품 〈말라(Malah)〉(2013)와 〈몰리스(Mollis)〉(2013)에서 사람의 몸은 공간에 겹치고 감싸이며 그 겹들 속에서 또 하나의 겹이 된다. 〈말라〉는 얇은 튤과 실크로 지어진 겹침의 방이다. 짙은 안개처럼 쏟아지는 부옇고 몽환적인 빛의 직물은 사방을 둥그렇게 감싸며 조그만 방이 된다. 이 방은 바닥과 벽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일렁이는 직물은 피어오르는 연기와 흘러 내리는 물, 그리고 그 두 사이에서 액체와 기체의 중간 즈음에 머무는 안개를 닮았다. 김은정은 〈말라〉에 퍼포먼스를 더한다. 그녀의 몸은 작품의 일부분으로서 연결된 옷을 입고 바닥에 흘러 고인 직물 속에 섞여 든다. 누워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까지, 〈말라〉의 안쪽으로 들어선 이들은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말라〉는 한 사람의 작은 숨소리와 맥박, 옅은 기척을 모두 자신의 순간으로 삼았다. 직물에 하나의 살아 있는 몸, 살아 있는 숨이 온전히 뒤섞였다. 〈말라〉의 퍼포먼스는 김은정이 겹들 속으로 숨을 깃들게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천들이 겹치고, 천에 사람이 겹치며, 그들은 잠시 스치듯 함께 호흡한다. 맥이 뛰는 소리와 직물들이 스치는 소리를 하나의 숨결로 겹쳐 낸다.
    흘러내리는 얇은 직물의 비정형성은 공간과 사람을 서로에게 열어보인다. 분열하는 세포들을 닮은 둥그런 버블 셀(bublle cell)의 겹들 역시 부드러운 틈들로 가득하다. 유기체의 몸은 언제나 틈새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비정형적인 세포의 틈새를 통해 우리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흐름을 이어 나간다. 버블 셀은 그런 틈새와 겹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 찾아낸 형태다. 그 생김은 둥그렇고 폭신한 거품이자 세포이며, 여성의 가슴과 브래지어, 작가가 뉴욕의 외로움 속에서 떠올렸던 엄마의 촉감과 숨결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몰리스〉와 〈The Alabaster Chamber〉(2024), 〈Elura〉(2025) 등을 통해 작가는 꾸준히 이 버블 셀과 거즈를 하나의 방으로 삼는다. 이 부드럽고 비정형적이며 일렁이듯 움직이는 겹들의 방에는 언제나 사람이 겹쳐 들어갈 틈이 있다. 이 ‘틈’은 ‘숨’으로도 번역된다. 버블 셀은 저마다 숨을 품었다. 방의 가벽이 된 부연 거즈들에도 저마다 그들에게 스치는 숨이 깃들었다.
    김은정의 작업은 수년 동안 버블 셀과 둥그런 공간, 안개처럼 드리워진 직물과 같은 환상의 더께를 변주하며 거즈와 실크, 튤, 털실 등을 재료로 삼아 왔다. 〈말라〉의 퍼포먼스에서처럼 〈몰리스〉에서도 그녀는 작품과 연결된 옷을 입고 그 겹의 시공의 한 겹이 되었다. 전시 《거의, 그런데 여전히(almost, and still)》(2026)를 통해 김은정은 겹들과 연결되는 감각을 찾아온 이들에게로 확장한다. 〈조금 전,〉에서 우리는 겹들 속으로 들어서 나아간다. 그들에게 스칠 때면 우리가 움직이듯 그들도 움직인다. 결국 머무름으로 수렴되기에 우리를 그 속으로 거닐게 하는 그들의 떨림과, 그들과 잠시 맞닿아 스치는 우리의 나아감이 교차한다.
    〈멀리 희미하게〉의 노방 천들은 비스듬한 원형을 그리며 배열되어 있다. 다만 이 반원은 앞서의 〈말라〉와 〈몰리스〉가 그 직물의 더께에 한 사람의 몸을 섞고 감출 틈을 주었던 것과 달리, 다른 방식의 길을 연다. 이번에는 몸을 감추는 대신 따라 걷도록 이끈다. 계속 걷는 이만이 계속 말소리를 따라갈 수 있다. ‘지나가다’ 뒤에 ‘돌아보다’가, ‘같이 있다’ 뒤에 ‘스친다’가, 그리고 다시금 ‘있는다’가 따라오는 걸 볼 수 있다. ‘같이’와 겹친 ‘있다’는 그 말 속에 겹쳐서 함께 있는 모습 자체를 담는다. 말들은 속삭임처럼, 소리를 전하려 가까이 기울어진 이에게서 전해져 오는 숨결과 그가 가 닿는 살갗처럼, 겹쳐 있다.
    김은정은 내게 스침은 슬픔이 아니라고 말한 적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영영 그렇게 머물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가 서로에게 가 닿은 적 있다는 애틋함이 스침이라는 말에 담겼다. 김은정이 짓는 겹은 버블 셀처럼 부드럽게 덩이져 아늑한 방이 되기도 하고, 온 몸으로 스침에 대해 쓰며 흔들리는 겹겹의 길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이제 나를 감춰줄 만큼 아늑한 겹의 방으로부터, 스쳐 지나가는 몸에 일렁이는 겹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가장 아늑한 머무름과 휘장 속으로의 나아감이 그녀의 여정을 직조해 보인다. 그러므로 그 여정은 그 자체로 소리를 닮았다. 머무름과 나아감이 서로를 움직이며 우리에게로 도래하는 모습을, 김은정은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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