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한 몸짓들 Transparent Gestures

    투명한 몸짓들 Transparent Gestures

    신한갤러리는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와 협약하여 매년 기획전을 개최, 올해는 김은정, 라움콘, 윤하균, 허겸 작가의 《투명한 몸짓들》을 개최한다. 전시는 현 예술계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네 작가(팀)의 고유한 작업 언어를 내포한 드로잉, 회화, 설치 등 여러 매체의 작업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와 연관된 다양한 층위의 감각에 대해 질문하고 그 일련의 여정에서 드러나는 주체적인 움직임이 담긴 작품들이 어떤 의미와 관계를 만드는지 주목한다. 그리고 반복과 겹침, 쌓임의 미학으로 완성된 작업들은 공간과 작업이 유기적으로 연결, 생명력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을 형성하며 관람객의 몸짓을 유발한다. 또한 다양한 동적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설치된 갤러리에서 우리는 태피스트리처럼 종과 횡, 여러 방향을 오가며 작가의 몸과 그 몸짓들이 만들어낸 작업들과 마주하게 된다. 전시명의 일부인 ‘투명한(Transparent)’은 장애 그 자체보다 장애를 가진 ‘작가’와 ‘그의 작업’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로 선택된 단어이다. 우리는 흔히 장애를 제약이나 불편함으로 인식하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창조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비 언어적 의사소통 중 하나인 ‘몸짓(gesture)’을 기반으로 수행적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네 작가(팀)의 감각에 기반한 독창적 작업의 궤적에 주목하고자 한다.

    김은정 작가에게 작업은 자신의 신체를 다시금 감각하게 해주는 또 다른 신체인 동시에 타인과 교감의 매개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설치 작품 <Aul>(2025)을 선보인다. 촉각에서 기인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 작업은 작가의 손끝에서부터 시작하여 갤러리 바닥과 천장을 뿌리 삼아 세포처럼 증식해 나가며 각기 다른 크기의 덩어리로 퍼져 나간다. 오랜 시간 수행적으로 제작한 그의 작업은 마치 누군가의 몸체 안에 있는듯한 시각적 환영을 주고 관람객은 자신의 신체로 직접 온기를 느끼며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작가와 감각적으로 소통하고 자신의 신체와 연결, 확장하여 또 다른 울림을 만든다.

    라움콘(Q레이터+송지은)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상실의 상상>(2019-현재)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오른쪽 신체가 마비된 Q레이터가 예전과 다른 몸으로 경험하는 낯선 몸의 감각을 관찰하여 기록한 드로잉 기반의 몸 아카이브다. 작가는 2019년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신체와 관련된 드로잉을 해왔다. 감각되지 않는 신체의 경험에서 시작된 작업의 몸짓은 신체 일부의 상실감에서 시작되었으나 작가는 신체의 한계보다 경험에 집중, 작가만의 감각과 상상으로 이를 치환한다. 그리고 부재의 경험으로 쌓은 무수한 가능성의 몸짓을 상상의 드로잉과 조형물 등의 작업으로 실체를 만든다.

    윤하균 작가는 괴물을 소재 삼아 광목천에 먹을 사용하여 작업을 한다. 오랜 시간 수행적으로 매일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의 몸짓이 반복돼 만들어진 작업 속 괴물은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기괴하고 위협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어 친근하게까지 느껴진다. 윤하균에게 괴물은 편견의 시선을 걷어내고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존재다. 그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된 괴물 중 일부 작품은 화면을 가득 채우기보다 한쪽에 치우쳐 절제된 듯한 형상이 작품 한 점 한 점 더욱 집중하게 만들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시장 곳곳에 출몰하듯 설치된 괴물 작업은 무의식 중 우리 신체의 움직임을 만들고 작업과 교감하는 적극적 몸짓을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2023년부터 주로 자신의 눈길이 닿는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허겸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도시의 사실적 풍경이라기보다 경계가 허물어져 추상화된 원경의 이미지다. 작가는 오랜 시간 산책하며 마주한 도시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장소나 날씨,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의 풍경을 묘사한다. 그리고 도시 풍경을 바라볼 때 느낀 정서를 자신만의 감각과 움직임을 담아 형태에 집중하여 건물들의 경계선에 붓질을 더해 희미한 도시 풍경을 완성한다. 작가의 풍경은 특정 도시를 표방하고 있지 않고 작가를 둘러싼 경험 속에서 말로 묘사하기 힘든 감각과 정서를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작업 과정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는 다시 말해, 작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같다. 네 작가(팀)에게 작업은 자신의 신체적 경험에서 체득한 내-외부와의 소통의 과정을 내포한다. 작가의 깊은 사유가 담긴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몸짓이 모여 작업을 구성하고, 이렇게 완성된 작업은 곧 작가를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이러한 태도와 작업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미완의 상태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작품에 새겨진 그들의 몸짓들을 해석해 보자. 나아가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몸짓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의미의 경험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 희망 대신 욕망

    희망 대신 욕망

    김은정은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로 인한 감각의 변화 예술로 풀어내며, 청각상실 이후 새돕게 발견된 촉각과 시각의 감각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감각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실된 감각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탐구한다 <전상의 숨결(슈쉬)> 속 '슈쉬’는 천이 스치는 소리이기도 하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일 때 닿는 숨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소리를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조형 언어로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볼륨감 있는 텍스처와 층층이 쌓이는 천의 조형적 구성은 작가가 세계와 접촉하며 감각을 재구성하는 수행적 과정의 결과물이다. 김은정은 감각의 상실을 결핍을 뛰어넘은,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으로 본다.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하며, 감각의 완전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해체한다. 작가는 상실된 감각의 공백을 확장의 공간으로 전환 시키며, 신체와 세계가 끊임없이 조율되고 연결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김은정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감각의 본질과 한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 Sound Shell Shush

    Sound Shell Shush

    전시 <Sound Shell Shush>는 작가의 손으로부터 펼쳐진 촉각적 공간에 관객이 직접 입장하는 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김은정은 섬유를 겹치고 감싸는 촉각적인 수행을 반복해 공간에 부피를 더하는 방식의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손바닥 크기의 세포와 같은 헝상 위에 각기 다른 부드러운 섬유를 겹치고 부풀려 만든 설치와 조각 작품을 통해 우리가 촉각적 감각을 통해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 The Alabaster Chamber는 거즈와 밴드, 솜과 같은 우리 피부에 가장 안전하고 무해한 섬유들을 포개는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둥글고 유기적인 형상들이 증식하고 있는 방이다. 한 손 안에 들어오는 손의 더듬음으로 느낄 수 있는 폭신한 세포 형상이 방 안에 퍼져나간다. 이것들은 모든 소란과 소리를 흡수하고 내 피부에 가장 가깝고 안전한 촉감으로 음향과 같이 사방을 채운다.
    관객들은 계단을 올라 시각적 형상을 촉각적으로 감상하며 이어서 방 안에 들어와 물리적으로 폭신함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서 촉각적 감상이란 단지 손과 피부를 통해 물리적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닌, 그것이 나에게 닿기도 전에 그 감촉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감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감상의 과정은 우리가 대상을 마주할 때 먼저 눈으로 그 감촉을 느끼고 안전함을 확인하고 그것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는 과정을 함축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는 부분이 어디부터인지 질문하려 한다. 눈과 피부로 공간의 안온함을 확인하고 고요한 촉감에 부유하듯 몸을 맡긴다. 전시 <Sound Shell Shush>는 단지 말하고 듣는 것만이 아닌, 눈을 통해 대상의 시각적 차원 너머를 감각하고 그것에 다가가고 직접 피부가 닿게 되며 우리는 공통의 감각을 소유하는 모든 것이 언어화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 기울기 기울이기 Art of Tilting

    기울기 기울이기 Art of Tilting

    김은정은 얇고 비치는 재질의 튤과 실크를 수십 겹 덧대어 포근한 벽을 만든다. 노랗고 붉은 빛을 가두고 있는 듯 은은하고 부드러운 장막은 감상자의 몸을 온전히 감싸는 둥근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느슨하게 아래로 늘어뜨린 하얀 튤 천장은 바깥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을 완성한다. 이곳에서 감상자는 오로지 색과 바스락거리는 소리-촉감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피부를 스치는 얇고 가벼운 장막을 스치며 무지갯빛의 소리를 듣는다.

  • 자기의 한 끄트머리-손 Un petit bout de soi

    자기의 한 끄트머리-손 Un petit bout de soi

    김은정의 개인전 <자기의 한 끄트머리-손 Un petit bout de soi>은 작가의 손으로부터 펼쳐진 촉각적 공간에 관객이 직접 입장하는 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김은정은 섬유를 겹치고 감싸는 촉각적인 수행을 반복해 공간에 부피를 더하는 방식의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각기 다른 무게의 섬유를 부풀리고 겹쳐 만든 설치와 조각 작품을 통해 우리가 촉각적 감각을 통해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아직 닿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관계와 소통을 시작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이미 상대를 감지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다양한 종류의 섬유를 감각하여 경험하게끔 한다. 상대가 나에게 속삭일 때의 간지러운 바람, 손에 닿았을 때의 한 손 가득한 온기, 그것이 몸 전체에 전해주는 안온함을 섬유를 바꿔가며 공간에 가득 채운다. 여기서 작품은 짧은 닿음의 순간을 계속해서 촉각적 세포로 증식하는 과정이다. 이 증식을 마주하며 관람객은 작품, 그리고 작가와 공동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마치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듯이, 자기의 끄트머리인 손으로부터 시작된 섬유는 어느 순간 자기 너머에 펼쳐지며 공간이 된다. 층층이 쌓이고 겹친 섬유의 설치 공간은 대상물을 향해 뻗은 손과 닿은 순간으로부터 자라난 공간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섬유는 거대한 살이 되어 세계의 한 면을 점유하고 퍼져나간다. 작가의 손끝에서부터 나온 촉각적 분출물은 마침내 관객의 몸을 향한다. 그는 손끝으로 분출된 공간에 관객을 끌어들임으로써 자기의 끄트머리로부터 세계의 끄트머리로 점점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소통의 매개는 ʻ말하고 듣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태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포근하고 안온한 품을 그리워하듯이 소통이란 공동의 시간이 축적되는 공간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ʻ자기의 한 끄트머리’가 상대를 감각하는 그 순간으로부터 친밀한 관계로 점진하는 그 소통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 손끝의 소리 Sounds from my fingertips

    손끝의 소리 Sounds from my fingertips

    어느 날 갑자기 청각이 나에게서 사라졌다. 종이책을 넘기는 소리, 나에게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 내 앞에서 손뼉 치며 웃는 친구의 웃음소리······. 그들의 입 가까이 귀를 대고 소리를 느낀다. 소리는 숨과 입김과 뒤섞이며 내 피부에 스친다. 그들의 말은 온도가 되어 내 뺨에 머문다. 마주 선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동그란 모양으로 내 눈에 새겨진다. 그들의 입 모양이 만들어내는 방울 방울의 소리 모양은 뭉쳐지고 흐트러지며 나의 세계에 펼쳐진다.

    소리가 사라진 나의 세계는 암흑과 같은 적막의 세계가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는 각기 다른 온도와 모양이 되어 나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 내 손끝이 사물에 닿을 때마다 생기는 작고 미세한 소리는 손끝의 마찰과 느낌으로 끊임없이 저장된다. 나는 이 소리의 기억을 다시 손끝으로 공간에 채워나간다.

    도란도란 우리의 입 모양이 계속해서 만들며 공간에 퍼지는 소리는 나의 손에 다시 담기어 올망졸망 소리 덩어리로 바뀐다. 바닥과 천정으로부터 소리 덩어리는 세포처럼 증식해 나가며 공간을 채운다.
    내 귀 가까이에서 말소리를 속삭이는 순간 볼에 닿았던 소리의 촉감과 온도는 가벼운 튤이 수 겹 겹친 공간에 다시 가득 찬다. 얇은 튤이 겹치며 만드는 무지개 색상의 공간은 소리가 내 피부에 닿는 순간 변화하는 나의 고요하지만, 풍부한 감각의 경험을 재현한다. 튤은 내 손끝으로부터 공간에 걸쳐지며 계속해서 내 몸을 가볍게 스치고 소곤소곤 내 피부에 속삭인다.

    나의 손은 세계로부터 던져진 소리를 촉감으로 전환하며 연주를 계속한다. 무언의 속삭임은 내 손의 온기로 공간을 채워나가며 그곳에 들어선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세계는 피부로 감각하는 언어로 새롭게 구조화된다. 나의 공간은 갖춰진 언어의 명확함에 앞서는 접촉과 환대의 감각으로 모두를 초대한다.